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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신년에세이

"죽어도 산다"

강태용 신부
대한그리스도정교회

얼마 전 둘째 동서가 돌아가신 후, 처형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꿈자리가 나쁘다며 기도를 부탁했다. 나는 친척 할머니 한 분과 함께 기도를 해주러 버스에 올랐다. 우리는 버스 안에서 인생살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는 갑자기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으면서 “나는 희망이 없어. 영감이 돌아가시면 나는 무슨 낙으로 살아갈지...”라고 말하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아, 늙으면 모두 저렇게 되는 건가?” 실은 나도 요즘 눈물이 많이 난다. 내가 삼십대 초에 환갑을 맞은 홀어머니에게 큰 절을 드리니 “너도 내일 모래 환갑이다”라고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나도 이제 어느덧 노인이 되었다.

이윽고 우리는 처형 집에 도착했다. 미망인이 된 처형은 의외로 슬퍼하는 기색 없이 웃는 얼굴로 우리를 대해주었고 미리 준비한 저녁상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다른 가족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깨끗이 정리된 넓은 아파트를 혼자 지키고 있었다. 처형은 아침에 손주들이 학교 가고 자식들이 출근하고 나면 집안 청소와 빨래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남편이 돌아가신 후 무척 외롭고 슬프며, 삶이 지루하고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오후 늦게 돌아오는 손주들과 아들, 며느리가 기다려지고 밤이 되면 남편 생각에 잠을 잘 잘 수가 없고, 어쩌다 잠이 들어도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잠을 설칠 때가 많았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신기하게도 외롭거나 꿈자리가 어지럽지도 않고, 하는 일이 힘들어도 마음이 기쁘고 홀가분하다고 했다. 우리는 처형에게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물었다. 처형 대답은 아주 단순했다. 동서가 돌아가시기 전에 하던 방법으로 기도를 했기 때문인데 그 기도란 바로 “예수기도”라는 것이었다. 검정 양털을 매듭으로 만든 묵주를 가지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이시여,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라는 기도 말을 계속하니 잡념이 없어지면서 영적 보호와 위로를 받는 듯한 느낌이 생겼다고 했다. 예수기도 중 “예수”라는 이름이 구세주(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이란 뜻)라는 의미를 가지는 것임을 염두에 두고 암송을 하니 마음이 더욱 평안해지면서 잠도 편히 자게 되었다고 했다. 처형은 계속 웃는 얼굴로 할아버지가 그 기도를 열심히 드렸다고 말씀하셨다. 임종시간이 임박했을 때, 할아버지는 자리에 누운 채 양 손으로 검정양털 매듭묵주를 치켜들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이시여,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외쳤다고 했다.

나는 동서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문병하여 함께 하루 밤을 지낸 일이 있었다. 그는 몸은 아주 허약한 상태였으나 예수기도를 열렬히 실행하였다. 그는 밤늦도록 지난날 이야기를 하셨다. 젊었을 때 열차 기관사가 되어 일하시다가 6. 25.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기차를 몰고 북에서 남으로 내려왔다. 그 후 줄곧 서울에서 살면서 결혼하여 아들 삼형제를 낳아 잘 길러서 여러 명의 손자손녀를 두게 되었다. 그는 가정을 위해서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스스로 자부했다. 그러나 사회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 하느님 앞에 서기가 부끄럽다는 말을 되풀이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예수기도를 열심히 하였다.

그 후 동서는 3주 후에 임종하셨다. 우리는 싸늘한 그의 손에 검정 양털 매듭묵주를 쥐어주고 신약성경, 성모님 이콘을 관속에 넣어드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서는 분명히 하느님의 품에 안겨 평안을 누리고 있으리라는 믿음이 간다. 정말 성실하게 사신 분이다. 미망인이 된 처형은 남편이 예수기도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것이 큰 덕이 되어 고인이 된 남편처럼 예수기도를 하니깐 생활이 기쁘고 즐겁고 마음이 평안하고 잠도 잘 잔다고 한다.

자신은 희망이 없다고 말하며 슬퍼하시던 친척 할머니는 대화와 기도 가운데 몇 번이고 눈물을 흘리더니 이제는 희망이 생긴다고 말했다. 늙어서 일자리도 없고, 생활도 딱하지만 자손들 모두 잘 되라고 기도하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영원한 천국에 대한 희망도 갖는다고 환하게 웃으면서 “우리 다 같이 동해바다가로 가자. 거기서 바닷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면서 살자.” 라고 크게 말했다. 우리 셋 모두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우리는 매실주를 한잔 씩 들고 “희망의 축배”를 나누었다.

“희망”에 대해서 한마디 더 하고자 한다. 지난 봄 부활절 아침, 예배를 드리려고 성 안나 성당이 있는 공내골(강원도 삼척 동해안 용화리 451-1)로 올라가다가 오랜 친구가 포플러나무 아래 땅바닥에서 앉아서 4홉들이 소주 한 병을 혼자서 마시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아침부터 왠 술이야? 안주도 없이”라고 말하며 그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는 나에게 종이컵을 건네주면서 한잔 권했다. 나는 속으로, “이거 마시면 곤란한데.” 하면서도 눈시울이 젖은 친구를 위로하는 마음으로 술잔을 받아 마시고 다시 그에게 한 잔 따라주었다.

술잔을 받아 든 그는 눈물을 닦으면서, “나는 이제 희망이 없네”라고 한숨 섞인 말을 했다. 내용은, 그는 지난 인생을 노동으로 살아왔고 아직도 일할 수 있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자리에서 밀려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희망으로 살 지 혼자 한탄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일은 만들거나 찾으면 되고, 아직 힘이 있으니 무슨 일이라도 하면 되지 뭘 거리 실망하는가? 용기를 내세!” 라고 격려하였다. 그는 조금 위안이 되는 듯 , “이제 내 나이도 일흔이 다 되었는데 무슨 일을 찾을 수 있겠으며, 무슨 일을 만들 수 있겠나? 텃밭이나 가꾸다가 때가 되면 북망산천으로 가야 되겠지!” 라고 말하면서 또 한잔 권했다.

나는, “자네는 상여를 질 때 ‘앞소리’를 잘하지 않는가? 자네는 훌륭한 앞소리꾼이야. 그 앞소리 내용을 잘 다듬어보면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고 또, 새로운 앞소리 내용도 만들어 보면 보람 있는 일이 될 것 아닌가. 우리는 우리가 언제, 어떻게 이 세상을 떠날지 모르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숨 쉬며 살고 있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은 죽으면 끝이라고 하지만 우리 신앙은 그렇지 않거든. 우리는 ‘죽어도 산다’는 믿음을 지니고 살고 있네. ‘죽어도 산다’는 신앙을 마음에 새기고 살면 좋겠네. 그러면 할 일을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네. 자네, 오늘이 무슨 날인줄 아는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날’일세! ‘죽어도 산다.’ 라는 신념과 희망으로 일을 찾고, 일을 한다면 마음이 평온하게 될 것일세. 힘내세!”라고 말했다.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자약력:
- 성명: 강태용(姜泰鎔)
- 생년월일: 1939년 9월 15일.
- 주소: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용화리 451-1
- (현) 대한 그리스도 정교회(한국 러시아 정교회) 주관 대사제
- (현) 사단법인 한러협력연구소 이사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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