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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러시아정교회 성직자 유스틴 강태용 신부

종교간 배타는 금물…"남 존중해야 내가 돋보여"


<서재에서의 유스틴 강태용 신부. 그의 옆에 보이는 러시아정교회 십자가는 가지가 8개여서
'8단의 십자가' 또는 '갈레리아 십자가'라고 한다. >


<약관의 유스틴 강태용 수사-천주교순교복자회>

국내 유일의 러시아정교회 성직자인 강태용 신부를 만나기 위해 기자는 강원도 삼척에서도 털털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한참을 더 달려야 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안도로 너머로 탁 트인 동해바다에 정신을 뺏기다 보면 장호라는 곳에 도착한다. 그곳에서도 한참을 산길로 오르면 해외러시아정교회 소속 '성 삼위일체수도원'이 위치해 있다. 작은 수도원은 마치 요술상자와 같았다. 수도원내 여기저기에는 처음보는 신기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십자가는 십자가인데 가지가 8개 달린 십자가다. 벽에 걸린 성화(이콘)들도 기존 가톨릭성당의 그것보다 더 둥근 모습을 하고 있어 따뜻한 느낌을 준다. 국내 하나밖에 없는 러시아정교회가 수도원을 이처럼 산골에 세우게 된 뜻을 강태용 신부로부터 들어 보았다. /편집자 주

-정교회가 우리나라에 들어온지 1세기가 지났다. 그럼에도 아직 많은 이들에게 정교회는 그리스정교회와 러시아정교회의 혼동으로 낮 설기만 하다. 러시아정교회와 그리스정교회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해 달라.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교가 처음 시작됐으나, 그후 사도들이 온 세상에 이를 전했다. 이 중 라틴문화권에서 생성된 교회를 라틴교회 또는 로만가톨릭이라 하고, 희랍문화권에서 성장한 교회는 정교회라 칭한다. 정교회는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을 중심삼은 그리스정교회 외에도, 각 나라와 지역별로 발전하여 러시아정교회 등 여러 독립교회로 운영돼왔다. 특히 비잔틴 전통을 이어받은 러시아는 10세기에 정교회를 국교화(化)하였으나, 17세기에 들어와 두 분파로 갈라져 신파 러시아정교회와 구파 러시아정교회로 나뉘었다. 해외러시아정교회는 1917년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이후 출범했으며, 나는 이 해외러시아정교회 소속 성직자이다.

-당시 러시아에 이미 두 개의 정교회가 있었음에도 해외러시아정교회가 새로 출범한 이유는?

△공산혁명이후 러시아내 정교회 교도권은 완전히 마비됐다. 혁명으로 10만명 이상의 성직자가 처형됐으며, 교회는 폐쇄가 되고 교회 건물들은 정부에 의해 공장 등 생산시설로 용도변경됐다. 당시 신파정교회 수장이던 티퀀 총대주교 역시 수감됐다. 그는 옥중에서 "처형을 피해 살아남은 주교들은 일단 해외로 나가 주교회의(시노드)를 형성하고, 교도권을 다시 세우라"고 명령했다.(칙령362호) 이 칙령에 따라 얼마 남지않은 신파정교회 주교들은 해외로 나가 혁명이전에 이미 출국해 있던 정교회 선교사들과 함께 해외러시아정교회를 출범시켰다. 이에따라 해외러시아정교회의 본부는 현재 미국 뉴욕에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당시 러시아에 남아있던 소수의 신파정교회 성직자들은 결국 공산정권과 타협하여 현재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으로 그 맥을 잇고 있다.

-본국에서 피난 나온 조직으로서 해외러시아정교회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해외러시아정교회는 '무신론 정권은 회계하라'는 내용의 방송 전파를 러시아 공산주의 70년동안 계속 러시아 땅으로 들여보냈고, 러시아 현지에 비밀조직을 파견해 지하교회를 만들고 운영해왔다. 또 전세계의 러시아 유민들과 네트워크를 형성, 러시아정교회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강 신부는 어떤 계기로 러시아정교회에 입문하게 됐나.

△45세 되던 해 처음 정교회의 문을 노크했다. 그 전에는 가톨릭에서 수도자생활을 오랜기간 했다. 정교회에는 많은 매력이 있다. 특히 영성적인 측면이 그러하다. 정교회에서는 자나깨나 앉으나 일어서나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 이로서 예수의 이름을 마음속에 새기는 것이다. 그래야 잡념이 없어지고 사목활동도 정성들여 잘 할 수있다. 이것이 동방정교회의 기본적인 영성훈련이다. 수도자로서 영성적인 측면을 깊이 갈구할 수 있다는 매력에 정교회에 입문했다고 생각한다.

-최근 기쁜 일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지난 6월 29일은 모든 해외러시아정교회 성인들의 축일이었다. 그 날에 맞춰 현재 한국러시아정교회가 속해있는 해외러시아정교회의 시드니교구청을 방문해 축하예배를 함께 드렸다. 예배(리뚜르기아) 중에 힐라리온 대주교(해외러시아정교회 호주, 뉴질랜드, 아시아 관구장)가 나에게 그동안 '한국선교책임자'로 수고한 공로를 치하하고 대사제지위를 축복해 줬다.

-대사제의 임무는 무었인가.

△대사제는 교회에 공헌하는 사람에게 주는 일종의 명예직이다. 따라서 대사제가 된다고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예식중 모자도 쓸 수 있게 됐고, 미사복의 십자가도 은색에서 황금색으로 바뀌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대사제 축복을 받던 날 현지 성당의 수많은 신부들과 신자들에게 축하를 받았던 일이 가장 기뻤다.

-해외러시아정교회의 십자가는 여느 십자가와는 다른 가지가 8개 달린 십자가(사진참조)인데, 의미에 대해 설명해 달라.

△가지가 8개여서 '8단의 십자가'라고도 '갈레리아 십자가'라고도 한다. 교부들 증언에 따르면 초기교회의 십자가 모양이 이와 같았다고 한다. 꼭대기의 가로 선은 '유대인의 왕 예수 나자렛'이라고 쓰여진 팻말을 상징한다. 또 아래의 비스듬한 가로 선은 예수님의 발 받침인 동시에 구원의 방향을 나타낸다. 예수님이 처형될 때 그의 양쪽에는 도둑 둘이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다. 이 중 한 명(오른쪽)은 회개했지만 다른 한 명은 회개하지 않았다. 회개한 도둑만이 구원을 받았다. 그래서 구원의 방향이라는 의미로 발 받침의 오른 쪽이 올라가 있는 것이다.

-요즘 각 종교계에서 정당 창당 움직임이 조심스럽게 대두되고 있다. 정치와 종교에 대한 정교회 입장은 무엇인가.

△교회와 정치는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 정교회의 오랜 전통이다. 정교회가 국교였던 동로마제국의 문장과 제정러시아 황제의 문장이 이를 잘 말해준다. 문장 속에는 머리가 둘 달린 독수리가 그려져 있다. 몸은 하나지만 머리가 둘이다. 또 그 두 개의 머리 위에는 하나의 왕관이 씌워져 있다. 여기서 왕관은 예수 그리스도를, 독수리의 몸은 백성을 나타낸다. 그리고 두 개의 머리는 각각 정치와 교회 지도자를 상징한다. 이는 정치지도자와 교회지도자가 하나님의 지도아래 서로 협력해서 백성을 구원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종교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또 정치인이 종교에 참여하는 것도 당연하다. 정치지도자들이 잘못하면 교회에서 야단을 치고, 교회가 부패하면 정치지도자들이 야단쳐야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교회 지도자와 정치 지도자가 상호 협력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편히 잘살게 하고(정치),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종교) 이끌어가야 한다.

-에큐메니컬(교회일치)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지금 개신교에서, 특히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중심으로 에큐메니컬운동이 크게 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종교간 배타는 금물이다. 남의 종교에 귀의하라는 말이 아니라 서로 수용하는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목탁을 두드리지는 않지만, 어쩌다 불교스님이 오면 이웃이 온 것처럼 잘 맞아주고, 그 분의 종교에 대해서 잘 들어주고, 긍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분은 그가 선 자리에서 인정해주고, 나는 내가 선 자리에서 인정받고, 그렇게 서로 협력해 가야 한다. 역사적으로 종교가 다르고 교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칼에 피를 묻힌 일이 많다. 한국에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교회일치라는 말이 지나치게 형식적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환경문제, 사회정의 문제에 각 종교에서 힘을 모아야 한다. 또 타종교를 미흡하다고 해서 이단시해서는 안된다. 나의 종교가 진정으로 좋은 종교라면 그들이 우리에게 끌려오게 되어있다. 우리한테 향기가 나고 빛이 나면 오지 말래도 오지 않겠는가. 벽을 허물고 하나되게 하는 화해가 중요하다.

-한국의 해외러시아정교회 역사에 대해 설명해 달라.

△한국에서는 러시아정교회가 1897년부터 1956년까지 활동했다. 그 후 40년 가까이 맥이 끊어지다 내가 1994년 해외러시아정교회 소속신부가 되면서 그 맥을 다시 잇기 시작했다. 우선 1917년까지 있었던 한국러시아정교회는 신파정교회 블라디보스톡 교구 소속이었다. 하지만 그해 공산혁명이 일어나 시노드가 붕괴되자 소속이 없어져 버리게 됐다. 그러다 1922년부터 일본정교회(독립교회) 소속이 됐지만 1945년 해방을 맞고는 일본정교회와의 관계도 끊어졌다. 당시 국내에는 김의한 신부라는 단 한 명의 러시아정교회 신부가 있었다. 하지만 6.25전쟁중 납북됐고, 이후 그리스계 미군 군목이 한국러시아정교회에 드나들면서 신부가 없는 상황에서 성당관리를 하던 문의춘(평신도)을 일본정교회 신부에게 데려가 서품을 받게 했다. 그런데 문의춘 신부는 한국러시아정교회 신부가 되자마자 신도들과 협의해서 소속을 그리스정교회로 바꿔 버렸다. 그 일(1956년)로 인해 한국러시아정교회의 역사는 1994년까지 중단되게 된 것이다. 현재 한국 해외러시아정교회의 신도수(한국인)는 대략 100여명 정도다. 여기에 국내 체류중인 러시아인이나 러시아국적 고려인 신도들의 숫자까지 더한다면 대략 5,000여명의 러시아정교회 신자들이 국내에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한국 러시아정교회의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한국 그리스도교 사회에 수도영성을 보급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우선 나부터 수도자로 생활하고 있다. 소규모 수도원을 전국 각지에 세울 계획이다. 현재에도 전국 10여개 지역에 소공동체들이 있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복지공동체를 만들 계획이다. 학술적으로는 정교회 교부들의 서적을 보급하고 싶다. 하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미뤄두고 있으며, 이미 번역을 끝낸 책들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출판을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 현재 인터넷을 통해 이를 보급하고 있다. 홈페이지(www.korthodox.org)에서는 정교회에 관한 많은 책들을 다운받아 볼 수 있다. 학술서적 외에도 홈페이지를 통해 러시아정교회의 음악, 미술(이콘) 등도 만나 볼 수 있다.

/인터뷰-정리= 류영훈기자 perkmeup@segye.com<종교신문>

<강태용신부 약력>

△1939년 강원도 삼척출생 △한국정교회 부산 성모희보성당 주임신부 역임 △러시아 상트 뻬쩨르부르그 신학아카데미 수학 △미국 뉴욕 조리단 빌 트리니티 수도원 수행 △1994년부터 한국러시아정교회 주관사제로 활동(현 성안나성당 주임신부) △'정교회 입문' '동방정교회 역사와 신학'등 10여권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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