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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신년에세이 II

양심, 선한 행동의 바탕


강태용 신부
대한그리스도정교회


“요즘 ‘세상살리기 운동,’ ‘지구살리기 운동’ 등 선한지향의 운동들이 많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선한 지향의 운동도 바탕은 양심이어야 합니다.”

얼마 전 서울 종로성당에서 친구따님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그 결혼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정담을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친구는 고철을 재처리하는 공장을 경영하는데 지난 십 여년간 정말 어려움이 많았답니다. 부도가 나서 도망 다닌 적도 있었고 고생도 많이 했답니다. 요즘은 형편이 좀 나아졌고 내년쯤이면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면서 기분 좋게 희망찬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친구는 수 년전, 자기회사가 어떤 친구는 격려의 말로 위로해 주었고 또 어떤 친구는 소액이라도 도와주면서 위로와 격려를 해주어서 큰 힘이 되었답니다. 그렇지만 평소에 그 누구보다도 가깝게 지냈던 한 친구는 자기에게 너무나 서운하게 대해 주더라면서 “사람이 돈 떨어지니깐 말이야 개취급 하더라구.” 라면서 힘들었던 지난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답했습니다. “이봐, 개도 개 나름이지만 개값도 상당하잖아, 개취급 당한다는 것은 그래도 아직은 쓸모가 있고 희망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게. 나는 말이야 사기꾼 신부라는 말도 들었다네. 내가 남에게 사기 친 기억이 없는데 말이야.” 그 친구는 어째서 내가 그런 말을 들었는지 이야기 좀 해보라고 다그쳤습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다음과 같이 그 경위를 말했습니다.

하루는 한 식당에서 국수로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 식당주인과 우리 일행은 막역한 사이였습니다. 우리 일행은 식탁에 둘러앉아서 음식을 기다리는데, 우리들의 오랜 친구인 그 식당 주인은 음식을 나르면서 나에게, “어이 강신부, 사기꾼 되었구먼” 이라고 말하면서 나를 힐끔 쳐다보았습니다. 그 순간 나에게는 “맞아, 나는 어쩌면 사기꾼인지도 몰라. 신자들에겐 선하게 살라고 강론을 해놓고 내 스스로는 실천 못하는 일들이 많지”라는 생각이 스쳐지나 갔습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생각 또 기분이 조금 상하기도 하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리 속을 오갈 때 그 친구는 연이어 덧붙였습니다. “난 말이야, 젊은이들이 새로 사제서품을 받을 때마다, 아, 젊은이들이 안타깝게 또 사기꾼이 되는구나 하고 탄식하곤 해”라는 폭탄적인 말을 했습니다. 우리 일행은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나는 ‘사기꾼 신부’라는 말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후 나는 독일 엣센시에 살고 있는 친구집에서 며칠 묵으면서 지낸 일이 있었습니다. 귀국전날 우리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나에게 “어이, 강신부, 귀국하면 말이지 먼저 ‘양심운동’부터 시작해. 사목도 선교도 중요하지만 양심운동이 바탕이 되어야 하네. 성직자들부터 양심대로 말하고 양심대로 생활하는 모범을 보여야 돼. 양심운동 안하면 나라도 세상도 다 희망이 없게 되네. 명심하게!” 라면서 힘주어 말했습니다. 나는 이 친구의 말을 늘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양심대로 산다는 기준은 어디까지 일까? 그리고 신부들이나 종교인들이 왜 간혹 사기꾼으로 비추어질까? 이러한 질문을 하면서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 안에서 양심대로 살리라고 다짐합니다.

몇 년전 “크린랩” 사건으로 검찰에 고발되었던 고영수 교수님이 5년여 법정투쟁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신문보도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일상 식생활에 사용되는 크린랩에 유해물질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고영수 교수님은 학자의 양심을 걸고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양심을 저버린 학자가 되어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그 후 긴 법정투쟁에서 고영수 교수님의 양심은 많은 고통을 이겨내고 결국은 무죄판결을 받아 양심의 승리를 이루어 냈습니다.

지난 70년대 어둡고 추운 긴 겨울밤과 같은 시대에 양심대로 말하고 양심대로 행동할 수 없었던 시대가 생각납니다. 한밤중처럼 캄캄하여 앞을 내다볼 수도 없이 괴로웠던 그 시대에 살아 있는 한 양심이 있었습니다. 그 양심은 밝고 빛나는 횃불을 밝혀들고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비추어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폭력에 의해 철창에 갇힐 것을 각오하고, “빛이 되어라!”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깃발을 높이 든 지학순 주교님이 바로 그 분이었습니다. 지학순 주교님께서는 1974년 7월 23일 아침에 “양심선언”을 한 것입니다. 이 양심선언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의를 바탕으로 유신헌법의 부당성을 하느님께 고발한 한 예언자의 진실한 외침이었습니다.

요즘, “세상 살리기 운동,” “지구 살리기 운동” 등 선한지향의 운동들이 많습니다. 다 좋습니다. 환경도 살리고 인간성도 회복해야 합니다. 모든 선한 운동은 온 세상에 두루 퍼져서 충만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만방에서 꽃피우고 열매를 풍성히 맺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선한 지향의 운동도 바탕은 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양심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꼭 양심대로 살아야 합니다. 성직자들은 양심대로 사는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신자들이 양심대로 살아야 하는 것은 세례를 받을 때 양심대로 살겠다고 이미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양심선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3:2).


이글은 “정의가 강물처럼” 제3호 (1995년 5월)에서 발췌한 것입니다(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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